내가 ‘탈북자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는 이유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외신 기자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탈북자의 관점’으로 본 북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인터뷰였다. 현재진행형인 남북정상회담 드라마 또한 이들 외신에게 탈북자 이야기를 할 기회가 됐다. 유럽의 한 유명한 TV 방송국 팀은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취재차 방한했고, 정상회담 취재를 보충하기 위해 나에게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드라마틱한 탈북자 스토리 형식이었다. 나는 인터뷰 제의를 망설이다 결국 거절했다.

지금 쓰는 글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지겨운 사실은 외신이 원하는 건 딱 한가지라는 거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또 오락거리까지 제공할 수 있는 불쌍한 탈북자 말이다.

물론 대부분 평범해 보이는 탈북자들의 프로필은 꽤 드라마틱하다. 다수가 굶주림, 정치적 박해, 인신매매를 피하기 위해 북한을 떠났다. 그렇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에겐 ‘흥미진진한 인생 스토리’가 있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고 비극적이며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기묘하고 이상한 이야기.

어떤 탈북자들은 인생스토리를 책, 소셜미디어와 언론에 공개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짜 북한 전문가로 탈바꿈한다. 세간에 주목받는 걸 즐긴다면 그들에겐 좋은 일이다. 그들의 삶이 잘 풀리길 바란다.

나도 예전엔 ‘인터뷰? 하면 되지 뭐’ 하고 생각했고 두어 번 인터뷰를 해봤다. 2003년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당시 외로웠던 내게 유명 외신 매체 기자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기분 좋기도 했다. 누구라도 TV방송국이 인터뷰를 요청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엄마, 아빠! 나 좀 봐! TV 나왔어!” 같은.) 되돌아보면 그 당시 너무 어리고 순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말하든 그 내용은 정교하게 편집되고, 때론 완전히 왜곡돼 특정 미디어가 추구하는 주제나 시각을 담는다는 걸. 외신은 날 배려한 게 아니라 조회수와 독자수 증가에만 신경썼으며 특히 요즘은 클릭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음의 말이 누군가에겐 이상하게 들리고 많은 탈북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북한의 끔찍함을 묘사하는 일원이 되고 싶지 않고 이미 여러 번 글로벌 왕따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폐쇄적 제왕국가로 묘사돼 온 나라를 또 비정상이라고 설명하고 싶지 않다.

북한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며 나라이기도 하다. 내가 자라고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어울렸던 곳. ‘바깥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 가족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곳이다.

물론 나도 다른 탈북자들처럼 북한에 대한 좋은 추억, 나쁜 기억을 모두 갖고 있다. 나쁜 것 없이 좋은 추억만 있었다면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내 과거에 대해 완전히 부정적으로만 말하긴 어렵다는 점을 사람들이 이해해 줬으면 한다. 북한에 살 때 비록 제대로 먹진 못했지만, 그게 내 일상이였고 난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봤을 때에서야 내가 북한에서 알았던 정상적 기준이 여러 면에서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남들에게 숱하게 들어왔다. 북한에 있을 때 난 어렸고, 그래서 추억을 미화하고 낭만적으로 간직해온 것일 거라고. 하지만 내가 앞으로도 항상 좋은 추억을 가질 거란 점은 분명하다.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보는 ‘공포국가’와 관련 없는 좋은 추억 말이다.

많은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언론 인터뷰에 엮이고 싶지 않은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원인은 트라우마다.

누군가 끔찍한 경험이나 사건으로 고통받았거나 그걸 견뎌야 했다면, 그와 관련된 대화를 최대한 피할 것이다. 소름끼치는 기억과 연관된 건 뭐든지 피하려 할 거다. 이게 트라우마의 일반적 증상이다.

나는 내 자신을 하나의 평범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싶다. 평범한 삶을 이끌고 트라우마를 극복해온 사람 말이다. 내 삶을 이끌어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나쁜 기억들을 소환하는 모든 정보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임을 배웠다. 지금까지는 이 방법이 유효했다.

이전보단 덜하지만, 지금도 안 좋은 기억이 자주 뇌리를 스친다. 그 기억은 밤에 꾸는 악몽으로 찾아온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다. 나는 갑자기 북한에 돌아와 있다. 빨리 지갑을 버리고 남한 국적의 흔적은 모조리 숨겨야 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보안원이 튀어나온다. 난 다시 도망가려 한다. 어디로 가지? 나 죽는거야?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이와 비슷한 꿈을 꾼다고 확신한다.

이런 꿈은 아무 근거없이 꾸는 게 아니다. 평소 깨어 있는 동안 마주치는 일이나 북한과 관련된 정보로 인해 생긴다. 몇 번이나 반복해 탈북자들의 쓰라린 경험을 취재거리로 빼 가려는 기자들도 이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내 인생 이야기를 팔고 흥미진진한 북한 스토리를 제조하는 공장의 일부가 되라는 조언을 주변에서 듣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난 이 조언을 그냥 흘려들을 것 같다. 내가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썩 잘생기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4월 27일, 3번째로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에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다. 회담은 분명 드라마틱할 것이고 잘 성사됐으면 좋겠다.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금요일에 만나는 순간, 나는 남들과 똑같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거다. 나중에 TV로 정상회담 장면을 볼 수도 있지만, 추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추측은 나라고 해서 남들보다 더 잘 알겠는가?

이것도 참 이상한 현상이다. 외신은 탈북자들에게 북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분석을 자주 요청한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대체 내가 북한에 대해 뭘 안단 말인가? (남들이 다 아는 정도만 나도 안다: 김정은이 비만이고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 정도.) 난 15살에 북한을 떠났다. 북한에서 산 삶보다 북한 이외의 나라에서 보낸 세월이 더 길다. 북한보다 남한에 대해 얘기할 게 더 많다.

나의 최우선 목표는 생계를 꾸리고 밥벌이를 하는 것이다. 남북 지도자들이 서로에게 입맞춤을 하든, 어느 자리에 앉든, 무엇이 식사 메뉴로 나오든 내겐 상관이 없다. (현재로선 이 정상회담이 마치 국내외 기자들 3천여 명을 포함해 만인을 부른 초대형 결혼식 같다.)

한국 속담으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다. 영어로 번역하면 ‘잡음은 요란한데 실질적인 이득은 없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전문적인’ 의견을 궁금해해서 말하는 건데, 내가 이번 회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 속담과 반대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거다. 그게 전부다.

북한은 희한한 이야기거리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읽는 인기있는 소재다. 하지만 북한은 내 과거이기도 하다. 난 과거 안에서 살고 싶지 않다. 요즘의 북한이 어떤 사회인지 난 모른다. 난 미래를 설계하고 싶지 과거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영원히 ‘탈북자’ 꼬리표를 달고 싶지 않고 북한이라는 부담을 계속 짊어지고 살고 싶지도 않다.

북한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다.

 

이 기사의 영문 버전은 4월 26일에 첫 발행됐습니다. (번역자: Jihyun Kim)

사진: 1988년 평양 (출처: Derzsi Elekes Andor via Wikimedia Commons, CCA-SA 3.0 Unp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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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oon (pseudonym) was born in North Korea, leaving his hometown during his adolescence and arriving in South Korea in 2003. He now works as an office worker in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