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유교 때문’이라 결론짓지 말자

외신을 보면 ‘유교’는 ‘동아시아’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종종 나타난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동아시아 국가와 관련한 것이면, 그게 장점이든 단점이든 유교로 모든 해석과 설명이 가능할 거라고 추정한다. 1915년 사회주의자 막스 베버는 “유교적 가치가 중국의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 ‘동아시아의 모든 현상은 유교에 기반한다’는 단순한 설명이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한 세기 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가족경영식 재벌기업 문화를 칭찬하는 동시에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유교적 대기업 문화가 강점이자 단점이라 지적했고, 이러한 가족 우선주의 의식에 편향된 경영 방식이 근로자들의 충성심을 키웠으며 의사결정 구도를 권력의 중심에 집중시켰다고 추론했다. 다만 글을 쓴 기자는 “일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으며 한국 대기업 문화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교는 공자(현재의 중국 영토에 기원전 5~6세기에 살았던 학자)의 가르침으로 정의된다. 유교는 불교, 도교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 굉장한 위력을 발휘해 왔다. 유교의 핵심을 단순하게 요약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요소는 현존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교육과 가족의 중요성, 성 불평등, 사회의 수직 관계다.

근대 이전에도 유교는 역사적으로 중화권이었던 국가 일부(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했다. 또한 근대에 들어서, 소위 ‘유교’라 불린 사상은 대만이나 싱가폴처럼 비교적 최근에 성립한 국가에서도 이전보다 더욱 복잡한 역할과 정체성을 갖게 됐다.

쉽게 정리하면, 우리가 ‘유교’라고 지칭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교는 몇 가지 단어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에 언급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 차이를 무시하고 해당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버림으로써 그들의 총체적인 성공과 문제점을 단일하게 설명하는 건 불합리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는 매우 서구적인 관점에서 동양을 대상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이라 할 수 있다.  

 

유교는 자본주의의 거룩한 성배인가?

유교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형돼 왔는지 이해하려면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서구 세력이 아편전쟁에서 중국에 승리하고 일본의 개방을 강요하며 동아시아에 지배력을 뻗쳤을 때, 당시 동아시아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국가가 ‘외국 야만인들’에게 어떻게 패배했는지 연구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유교는 당시를 지배하던 관념이었고, ‘발전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비판받게 됐다. 한국에서는 유교를 향한 거센 비판이 당시 관료체제에 종사하는 사대부 기득권층을 향했다. 조선시대 후반기에는 유교에 대한 집착과 형이상학이 과학, 기술과 같은 실학의 보급을 저해했고, 이는 국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해결책으로 제시된 동도서기(서양의 그릇에 동양의 정신을 담는다. 즉 동양의 도덕과 윤리를 고수하되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룬다)처럼 잘 알려진 문구는 아시아가 진보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상징하게 됐다. 그것은 서양의 과학 기술 및 개혁을 포용하면서도 국가가 원래 갖고 있었던 관습과 사고방식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자본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같은 서구의 다양한 개념들을 선호하면서 ‘유교를 완전히 버리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촉진했다는 점에서 가장 크게 평가받는 인물은 악명 높은 독재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는 ‘유교 국가’를 경멸했으며, 국내 기업가 정신의 부재를 유교 자체, 그리고 유교가 철학 연구를 중시하는 데서 찾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실행한 경제 정책의 특징은 엄선된 소수의 대기업들과 긴밀한 공조 안에서 국가를 독재하는 계획이었는데, 이는 권위주의적 통제, 저임금 노동력과 대자본을 결합해 이뤄졌으며 유교적 성향과 관념은 완전히 배제하고 실행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면 새뮤얼 헌팅턴 같은 정치과학자 등 서구의 학자들은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일으킨 초유의 경제 성장의 원인을 왜 유교라고 평가하게 됐을까?

크게 일반화하기는 무리지만, 아시아는 서구보다 좀더 가족중심적이었고 집단주의적이였으며, 이런 특징의 원인은 유교 때문으로 간주돼 왔다. 서구에서 유명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교육에 대한 강조’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동아시아 국가의 ‘공부 열의’는 유학자들이 강조한 학문의 중요성(주로 덕을 쌓는 차원에서)의 연장선인 듯하다.

특정 학자들은 유교가 경제적 성장의 배경을 쉽고 유용하게 설명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해 왔다.  고학력의 중요성이 유능한 젊은 인재들의 구직 열기로 이어지고, 사회의 수직관계가 근로자들이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경영 체제로 나타남으로써 지역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전제 하에 ‘경제적 성장의 원인은 유교’라는 결론에 이른 것 같다.

유교의 복잡한 역사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몇 개의 특징만 뽑아 요약하면, 사회의 성공뿐 아니라 문제점을 설명하는 데도 활용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특히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 경우에도 그렇다.

적절한 사례를 들어보자.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의 괌 추락 사고 원인은 힘든 근로 일정과 ‘한국적 문화의 엄청난 무게에 따른’ 권력 구조 때문이라는 논평이었다. 글래드웰은 ‘유교’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 권력 구조 때문에 부조종사가 차마 상급자에게 비행 오류를 보고할 수 없었고 이는 200명 이상의 승객과 승무원들의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2013년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충돌 사고 때도 서구 매체들 사이에서 유교에 집착한 문화주의적 설명이 다시 유행했고, 이에 미국 잡지 ‘디 애틀랜틱’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비판했다. “이 충돌 사고가 한국, 또는 동아시아나 공자의 특징을 대표한다면 […] 아시아인 조종사들이 이끄는 비행기들 수천 대가 매일 아시아 전역을 관통하며 안전하게 착륙하는 현상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는가?”

그보다 최근에 발생한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도 외신 상에서 또 한 차례 유교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도 ‘복종 문화’가 공격의 대상이 됐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고등학생이었고 학생들은 “지금 있는 곳에 머물러 있으라”는 선원들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가 배의 침몰과 함께 사망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하지만 ‘순종적 태도’가 오로지 유교나 그 밖의 요소에만 기인한 것일까? 어쩌면 한국사회에 뿌리가 깊은 군대주의 때문은 아닐까? (한국은 1987년까지 30년 이상 이어진 군사독재주의로 아픔을 겪었고, 지금도 존재하는 징병제는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을 약 2년간 군대로 보낸다.)

그리고 유교에서 강조하는 ‘도덕적 청렴성’과 ‘사회에 대한 책임’은 왜 사고 원인 분석에서 빠진 것인가? 유교가 세월호 참사 원인에 영향을 준 것이 맞다면, 선장은 자기만 살아남으려고 먼저 탈출하는 대신 마지막 승객이 구조될 때까지 배에 머물렀어야 했다.

 

만들어진 ‘아시아적 가치’

유교는 복잡다단한 전통이다. 약 2500년간 존재해온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사실이다. 유교는 단지 복종, 가족, 교육만 중시하지 않는다. 박애와 자비심도 고취한다. 공자는 아시아의 중국어권 국가에서 신의 인격체로서 역할을 해 왔고 현재도 사당에서 숭배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유교는 사회적 관행이나 관습을 구성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서울 도심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철학적 또는 종교적 전통과 마찬가지로, 유교는 그 오랜 역사동안 신봉자들, 또는 반(反)유교사상가들에 의해 각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받았다.

유교적 가치는 근대 중국에서 뒤떨어진 가치로 비판받았고, 문화혁명기(1966~1976년)에는 거의 근절됐다. 그 후 이어진 경제도약 시대엔 다른 신념이 유교의 빈 자리를 채웠는데, 바로 물질주의다. 하지만 최근 유교가 다시 복귀하고 있다. 공산당이 사회적 화합을 선전하고 억압을 정당화하려는 도구로서 유교를 부활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유교는 봉건적이고 후진적이란 이유로 한때 공격받았지만 이제는 중국의 독특한 사상 체계로 새로 브랜딩되고 있다. 또한 유교는 한 편으론 자본주의, 다른 한 편으론 1당 체제로 정의되는 공산주의를 결합해 중국의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를 탄생시켰다.

한편 1959~1990년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는 유교적 관념을 ‘아시아적 가치’라며 싱가포르의 독특한 특징으로 여러 번 강조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불교, 이슬람, 힌두, 기독교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라는 사실을 별로 상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각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유교적 개념을 강조한 동기는 ‘사회적 화합’이라는 미명 하에 정권의 힘을 굳게 다지고 강압 통치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리콴유는 민주주의, 자유와 같은 서구의 이상을 거부했다.  

리콴유는 남성 간 합의한 섹스에 대한 처벌이나, 언론 자유 제한 등 무수한 법적 규제를 지속시켰다. 또한 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이 ‘싱가포르(또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와 전통’이라 칭한 엄격한 규율, 전통적 가족관, 복종을 언급했다.

다음은 리콴유가 생전에 말한 내용으로 미국에 총기, 마약, 폭력 범죄가 만연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개인이 사회적으로 옳거나 잘못된 행동을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를 확장한다면, 그것은  질서정연한 사회를 희생하는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그들의 회사를 가족에 비유한다. 예를 들어 ‘삼성 식구’처럼(물론 중소기업에서도 이런 문화가 있다). 이는 직원들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헌신감을 기르기 위해서다. 이러한 기업 체계에서는 엄격한 수직적 문화가 흔하고 이러한 문화는 긍정적인 용어로 미화된다. 여기에 ‘유교적 문화’라는 꼬리표가 노골적으로 붙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을 중요시하는 한국 전통을 자본주의와 결합한 사례다.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인들은 ‘유교적 가치’로 불릴 수 있는 것들을 점점 거부한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대신 혼자 밥을 먹고, 어르신을 예전만큼 공경하지 않거나,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다. 특히 2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를 심하게 강타한 이후부터, 국내 학자들 일부는 한 세기 전 지식인들이 말했듯이 “유교가 한국 사회에 상당한 부작용을 가져다 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김경일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교수는 저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유교적 전통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유교를 비판했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 어른, 기득권자,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김 교수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이 주장에 반대한 유학자들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지만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아시아인들이 그동안 유교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참고하면, 그들이 이해하는 ‘유교’는 그 정체성을 구분짓는 범위가 늘 조금씩 변한다. 만약 배운 사람이라면  특정 국가나 지역을 설명할 때 한 가지 단어만 적용해서 풀이하거나, 수백 년을 이어온 지적 전통을 정의할 때 두세 가지만 서술하고 끝내진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급격한 경제 성장은 여러가지 원인의 결합으로 발생했다. 그 원인은 해외 국가들의 원조, 개인의 자유 억압, 국가와 기업 간 결탁 등이다. 복종이나 충성 같은 ‘유교’의 몇 가지 교리들이 경제 성장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순 있다. 하지만 마치 하나의 붓으로 큰 획을 그어버리듯 여러 국가들의 다양한 발전 궤적을 한 번에 ‘유교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건, 안타깝게도 서구권의 소위 지식인층이 흔히 범하는 아주 게으른 저널리즘이며 엉성한 학문이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의 모든 현상을 유교 탓으로 돌리지 말자. 그런 식으로는 북한 정권의 여러가지 특수성도 유교로 설명 가능할지 모른다.

앗, 잠시만. 이미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그런 글이 나와 있다.

 

이 기사의 영문 버전은 1월 24일에 첫 발행됐습니다. (번역자: Jihyun Kim)

사진 출처: Pixabay

Comments

comments